남극 해조류가 바꿀 이차전지

남극 해조류가 바꿀 이차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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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해조류가 화장품 원료를 넘어 이차전지 소재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혹독한 극지 환경에서 생존한 생물의 물질을 활용해 전지 성능을 높이고, 인공지능으로 신약 후보의 구조를 기존보다 최대 25배 빠르게 예측하는 연구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5일 강릉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회 강릉 천연물 바이오 국제 콘퍼런스’에는 극지연구소, 지스트, 카이스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디지스트, 포스텍 등 6개 과기원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참여했습니다. 전시의 공통된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천연물과 AI, 뇌과학, 친환경 소재가 각각의 섬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 남극 천연물, 배터리 소재가 되다

극지연구소는 남극 해조류에서 얻은 황화다당체에 주목했습니다. 황화다당체는 당 분자가 길게 연결된 다당체에 황산기가 붙은 물질로, 연구진은 이를 의약품과 화장품뿐 아니라 산업 소재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황화다당체를 리튬-황 이차전지의 바인더로 적용해 전지 성능을 높이는 연구가 소개됐습니다.

바인더는 전극 활물질과 도전재를 금속 기판에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리튬-황 전지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할 가능성이 있지만, 충·방전 과정에서 소재가 이동하고 전극 구조가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남극 천연물이 이 과정에서 소재를 안정적으로 붙잡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생물자원이 차세대 배터리의 보조재로 이어지는 새로운 경로가 열립니다. 다만 이번 연구의 실제 산업 적용에는 대량 확보, 균일한 품질, 제조 비용 검증이 뒤따라야 합니다.

남극 해조류에서 얻은 황화다당체는 자외선으로 손상된 피부 재생과 지방세포 형성 억제 연구에도 활용됐습니다. 남극 미세조류에서는 단일 성분인 ‘1-MEST’를 분리해 항주름 효능을 확인하고 관련 제제를 개발했으며, 남극 지의류의 트리터펜 성분은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에서 뇌종양 억제 효능을 검증했습니다. 하나의 생물자원이 배터리, 화장품, 의약 분야를 동시에 겨냥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 AI 신약 개발, 속도와 설계의 결합

카이스트는 바이오 AI ‘케이폴드(K-Fold)’를 공개했습니다. 케이폴드는 신약 개발에 필요한 단백질과 약물의 결합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이며, 연구진에 따르면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3에 근접한 정확도를 유지하면서 기존 AI 모델보다 구조 예측 속도를 최대 25배 높였습니다. 신약 개발에서 속도는 단순한 편의성이 아니라 수많은 후보 물질을 검토할 수 있는 실험 규모와 직결됩니다.

AI의 역할도 단백질 구조 분석에 머물지 않습니다.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고 약물이 실제로 작동할 가능성을 살피는 단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규리 교수 연구진은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대 교수와 공동 연구를 진행해 특정 화합물을 인식하도록 설계한 인공 단백질과 바이오 센서를 구현했습니다. 이관수 교수 연구진의 ‘지피씨알액트(GPCRact)’는 신약 후보 물질이 GPCR에 결합하는지, 수용체를 활성화하는지를 예측합니다.

난치암 분야에서는 KRAS G12D 돌연변이를 가진 암세포만 인식하는 항체 설계와 환자별 암 돌연변이에 맞춘 맞춤형 항암 백신 AI가 소개됐습니다. 비타민A 유래 물질인 ATRA로 면역 세포 탈진을 막아 뇌종양 면역 항암제의 효과를 높인 동물실험 성과도 전시됐습니다. 다만 AI가 제시한 후보가 실제 환자 치료로 이어지려면 세포실험, 동물실험, 임상시험이라는 긴 검증 단계를 통과해야 합니다.

💎 표준화가 천연물 산업의 관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천연물중앙은행을 통해 국내 식물과 한약·기능성식품 소재, 해외 식물에서 만든 표준추출물을 연구자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천연물은 같은 식물이라도 채취 시기와 지역, 추출 조건에 따라 성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표준화된 추출물과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면 연구자는 원료 확보 단계에서 반복되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효능과 작용 기전을 일정한 조건에서 검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천연물 연구를 발견 중심에서 재현성과 산업화 중심으로 옮기는 기반입니다.

💎 바다와 폐목재에서 찾은 탄소 해법

포스텍은 생물의 기능을 본뜬 소재와 탄소 중립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키조개의 금빛 구조색 원리를 활용한 지속가능한 섬유·안료, 멍게와 해초의 접착 원리를 응용한 조직 접착제가 대표적입니다. 재조합 단백질 ‘서커린(suckerin)-12’를 활용한 하이드로젤은 물속에서도 달라붙어 지혈과 상처 치유에 활용될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해양 환경에 맞춘 ‘인공산호입자’는 바닷물 속 이산화탄소를 안정적인 탄산 광물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연구진은 제거한 탄소량을 측정·보고·검증하고 향후 탄소크레딧으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시화호에서 현장 실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또 폐목재와 같은 바이오매스를 플라스틱 원료로 바꿔 석유계 원료 사용을 줄이는 연구도 소개됐습니다. 복합소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준보다 크게 낮게 나타났다는 점은 자원순환 기술의 사업성을 판단할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 투자 시사점과 남은 과제

이번 전시는 국내 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이 단일 신약 후보나 한 가지 소재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극지 천연물은 원천 소재, AI는 설계와 탐색, 표준화 인프라는 재현성, 친환경 기술은 실제 적용과 검증을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산업적 가치는 전시된 기술의 참신함보다 대량생산, 안전성, 규제 통과, 현장 검증을 거쳐 반복 가능한 제품으로 전환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남극 해조류와 인공 단백질이 연구실의 성과를 넘어 시장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핵심 관찰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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